김성윤 기자의 면(麵) 이야기

일본인들의 소울푸드, 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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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동네가 있나?, 일본 가가와(香川縣)현에 갔을 때 들었던 이런 의문이다. 논 한가운데 우동집이 태연하게 서 있고, 좁은 길을 따라 30여 분을 산속으로 들어가면 우동가게가 갑자기 나타난다. 산을 넘어도 우동집, 개천을 건너도 우동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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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깡촌 출신으로 일본열도를 장악한 사누키 우동

가가와현은 사누키(讚岐·さぬき라고도 쓴다) 우동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사누키는 가가와현의 옛 이름. 오사카에서 세토내해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2개 넘고 고속도로를 3시간 달려야 닿는 시코쿠(四國)섬에 있다. 인구가 10만여 명에 불과한, 그야말로 ‘깡촌’이다.

하지만 가가와현에서 소비되는 밀가루 양은 일본 최고 수준이다. 우동 덕분이다. 이곳 사람들, 중독됐나 싶을 정도로 우동을 먹어댄다. 1년 동안 먹는 우동의 양이 일본 평균보다 7배나 더 많다. 아침에도 우동, 점심에도 우동, 저녁도, 간식도 우동이다. 가가와현 안에 700개가 넘는 우동집이 있다. 일본사람들이 “가가와에는 신호들보다 우동집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더 놀라운 건 우동을 맛보러 여기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일본 우동의 성지(聖地)랄까. 우동집마다 일본 전역에서 몰려든 우동 마니아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주차장에는 비교적 가까운 오사카, 고베는 물론 교토 심지어 차로 15시간 거리인 도쿄 번호판을 단 승용차도 있다.

가가와에서 우동을 많이도 먹지만 먹은 지도 오래됐다. 804년 헤이안 시대 당나라로 유학 갔던 구카이대사(空海大師)가 밀교(密敎·불교의 일파)와 함께 우동도 들여왔다. 대사가 머물던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현 시안(西安)) 주변은 광대한 밀 경작지였고, 사찰마다 면요리 전문 승려가 있었다. 대사는 이들에게 밀가루를 제분해 국수로 만드는 법을 배웠고, 고향인 가가와 사람들에게 전파했다고 전해진다.
사누키에서 우동을 먹는 방법은 크게 다섯 가지. 삶은 우동에 간장과 미림, 설탕, 멸치육수 등을 섞은 진한 국물을 조금 뿌려 먹는 ‘붓가케우동(ぶっかけうどん)’, 우리 흔히 아는 우동과 가장 비슷한 ‘가케우동(かけうどん)’, 우동을 삶은 물과 함께 큰 통에 담아 건져 먹는 ‘가마아게우동(釜揚げうどん)’, 삶은 우동을 찬물에 씻어 진한 국물에 찍어 먹는 ‘자루우동(ざるうどん)’, 삶은 우동에 날달걀을 넣고 비벼 먹는 ‘가마타마우동(釜玉うどん)’이 있다.

여기에 강판에 간 생강이나 무즙, 튀김가루, 파채, 참깨 정도를 뿌려 먹는 것이 고작이다. 특별한 국물을 쓰지도 않고, 별다른 꾸미를 얹지도 않는다. 사누키 우동은 다른 지역 우동보다 굵고 쫄깃하긴 하지만 우동 맛이 전국적으로 평준화된 요즘은 큰 차이가 없다. 굳이 말하자면 갓 삶은 면을 그 자리에서 먹는 싱싱함이랄까? 한국에서 먹던, “국물이 끝내주는’ 우동을 상상하면 실망한다. 하지만 바깥쪽은 껌처럼 부드럽게 말랑하면서도 중심은 고무처럼 탱탱한, 두 가지 어찌 보면 모순적 질감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국수 자체의 맛만큼은 일본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일본에는 여러 스타일의 우동이 있지만, 일본 열도를 장악한 건 사누키 우동이다. 국내에서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우동이다. 서울 합정동 ‘교다이야’, 한남동 ‘니시키’, 홍대 앞 ‘댕구우동’, 합정동 ‘우동카덴’이 사누키 우동으로 이름 난 가게들이다.
가가와의 사누키 우동처럼, 일본에는 지역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우동이 있다. 지역적 조건과 역사에 따라 제조공정이나 면발, 모양, 맛, 장국 등 지역색을 띈다. 사누키 우동과 함께 아키타(秋田縣)의 ‘이나니와(稻庭) 우동’, 군마(郡馬)의 ‘미즈사와(水沢) 우동’을 묶어 ‘일본 3대 우동’으로 꼽기도 한다. 나가사키(長崎)의 ‘고토(五島) 우동’과 아이치(愛知縣)의 ‘키시멘(きしめん)’을 추가해 ‘5대 우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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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한 칼국수 같은 건면 우동, 이나니와 우동

아키타현 이나니와 지역에서 수타면 제법으로 만들어진 건 우동이다. 사누키 우동보다 얇고 말리기 전 살짝 눌러 위 아래로 납작한 것이 통통한 칼국수 같다. 반죽할 때 전분을 묻히며 유백색을 띈다. 에도시대 초기인 17세기 초 이 지역에 살던 사토 이치베이(佐藤市兵衛)가 지역 밀을 사용해 각종 면류를 제조한 데서 비롯됐다고 알려졌다. 이후 사토 기치자에몬(佐藤吉左衛門)이 기술을 계승 개량해 1665년 이나니와 우동의 표준 제법이 확립됐다. 반죽을 손으로 여러 번 치대어 삶아서 오래 두어도 탱글탱글한 식감을 유지하는 게 특징이다. 서울시청 맞은편 ‘이나니와 요스케’가 이나니와 우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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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누키 우동은 이제 그만… 요즘 뜨는 미즈사와 우동

군마현 시부가와시 이가호마치의 미즈사와 부근에 있는 사찰 미즈사와테라에서 참배객들을 위해 군마현에서 생산된 밀과 미즈사와산(水沢山)에서 솟아나는 약수로 만든 우동에서 유래했다. 밀가루 반죽을 발로 밟은 뒤 숙성과 펴는 과정을 열 번 정도 반복해 자른 다음 햇볕에서 2번 말린다. 제면 과정에서 반죽이 손이나 작업대에 들러붙지 않도록 사용하는 가루를 덧가루라고 하는데, 이 덧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 숙성기간이 다른 우동보다 길어 면발이 쫄깃쫄깃 탄력이 좋다. 최근 일본에서 사누키 우동의 ‘장기 독재’를 끝낼 유력 후보로 꼽힐만큼 미즈사와 우동의 인기 상승세가 심상찮다. 이러한 트렌드가 한국으로도 전해졌는지, 마트에서도 미즈사와 우동을 찾아볼 수 있다. 서울 가로수길 ‘와라쿠’는 미즈사와 면을 직접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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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말 모양? 기슈 사람이 만들었다? 꿩고기면? 알쏭달쏭 기시멘의 유래

아이치현 가리야시(刈谷市)에서 탄생했다. ‘기시’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해진다. 우선 면이 넓게 편 바죽을 둘둘 말아 둔 형태가 중국의 장기(將棋) 말 모양과 비슷해 장기 돌을 뜻하는 고이시(碁子)라는 말에서 기시라는 이름이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기슈(紀州) 지역 사람이 이 우동을 처음 만들었다고 해서 지역명을 따라 기슈멘(紀州麵)이라고 부르다 기시멘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과거 이 지역에선 영주에게 꿩고기를 넓적하게 펴서 길게 잘라 면처럼 만들어 진상했는데, 꿩고기를 뜻하는 ‘기지(雉子)’에서 ‘기지멘(雉子めん)’이 되었다가 기시멘으로 변화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건 이름의 유래설에서 알 수 있듯, 기시멘은 폭이 3~4mm에 폭은 2mm로 다른 우동보다 넙적하고 얇아서 삶은 시간이 훨씬 짧은 대신 면발이 쉬 끊어진다. 표면이 매끄럽고 반들반들하다는 점도 이 우동의 특징이다. 고토 우동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기시멘을 내는 식당은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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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케·붓가케·자루·미소니코미… 먹는 방식대로 달라지는 우동

우동은 어떤 국물이나 꾸미를 올려 먹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가짓수가 늘어난다. 가장 기본은 ‘가케 우동’이다. 간장으로 맛을 낸 뜨거운 육수에 말고 파채를 올린다. ‘자루우동’은 잘 삶은 면을 찬물에 씻어 자루(체)에 담아 낸다. 진한 츠유(간장)를 찍어 먹는다. ‘기쯔네 우동’은 간장과 설탕, 미림으로 양념한 유부를, ‘다누키 우동’은 튀김 부스러기를 고명으로 얹는다.
‘카레 우동’은 다시 국물에 카레 가루와 전분을 넣어 걸쭉하게 만든다. ‘덴푸라 우동’은 오징어나 새우, 채소 등 각종 튀김(덴푸라)를 얹은 우동이다. ‘니쿠 우동’은 간장, 설탕 등으로 양념한 소고기나 닭고기, 돼지조기를 올린 우동. ‘치가라’ 우동은 모찌(떡)을 넣은 우동이다. 일본에선 설이나 경사스러운 날 모찌를 먹는 전통이 있다.
‘미소니코미’ 우동은 된장의 일종인 하초미소(八丁味噌)를 넣고 끓인 나베(냄비) 우동으로 나고야 전통 요리다. 야키우동은 우동면과 고기, 채소 따위를 소스에 볶아 만든다. 기타규슈의 고쿠라에 있는 한 식당에서 개발됐다고 알려졌다. ‘붓가케 우동’은 삶은 우동에 각종 고명을 얹고 다시를 살짝 끼얹는 스타일로, 오카야마현 구라키시에서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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