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볼로네제 파스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면이 입에 착착 달라붙고, 씹으면 고소한 계란과 짭짤하고도
감칠맛 나는 파르메산 치즈의 폭탄이 이어진다.
남북 2천㎞에 달하는 지형이 지방마다 고유의 볼거리·먹거리 만들어내…
세계 부호와 유명 배우들이 찾는 최고의 육가공품 제조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이 미식의 본고장이라는 명성을 얻은 데는 풍부한 물과 초지등 지역·환경적 요인이 컸다. 이지방의 명물인 파스타 프레스카는 국수가 아닌 만두형태로도 요리된다.
필자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느낀 것이지만 한국인 관광객들은 어떤 정형화된 관광 패턴을 갖고 있었다. 로마에서 며칠간 숙박하면서 로마와 바티칸을 둘러본다. 당일치기로 나폴리와 폼페이(간혹 카프리 섬 포함) 유적지를 본 후 역시 당일치기로 피렌체를 보는 식이었다. 더러는 밀라노를 찾기도 하지만, 역시 당일치기 쇼핑이 대부분이었고 베네치아도 숙박은 하지 않고 슬쩍 들러보는 지역으로 통했다.
현지 교포들은 이런 관광 패턴에 대해 좀 의아해한다. ‘로베피폼’(로마·베네치아·피렌체·폼페이)만 이탈리아냐는 것이다. 물론 이 네 곳의 관광지는 세계적이고 아주 훌륭하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아주 넓고 각기 다른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다. 이탈리아는 남북으로 2천㎞가 넘고, 통일된 지 150여 년 밖에 되지 않아 지역색도 강해 지방마다 고유의 관광자원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관광객의 패턴대로 현지 한국인 관광업계에서 기반을 다지다 보니, 지속적으로 이 지역 관광만 상품으로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이 지역 외에 어느 곳이 볼 만할까? 최근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가기 시작한 중북부 해안선인 친퀘테레는 일단 예외로 하자. 엄청난 절경이 알려지면서 소규모나 개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다음으로는 피렌체와 시에나 라인이다. 특히 가을철에 포도수확을 하거나, 누렇게 익은 포도잎이 물결치는 이 길을 차로 달리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이어진다.
그 다음으로는 피에몬테 지방이다. 북서부의 프랑스 접경 지역인 이 지방은 먹거리가 아주 대단하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바롤로(세계 최고의 와인이다)가 생산되는 곳이라 와인 애호가라면 꼭 들러봐야 한다.
남쪽으로는 시칠리아섬도 고유한 문화와 풍경으로 인기가 높다. 최근 소수지만 한국인들이 들르기 시작했다. 필자는 주로이 섬에서 일했는데, 한국인을 볼 수 없어서 심한 향수병에 걸리기도 했다.
볼로냐에는 ‘볼로네제 스파게티’가 없다?
오스트리아 접경지역으로 과거에는 이탈리아의 영토가 아니었던 티롤 지방도 가볼 만하다. 북 티롤은 오스트리아, 남 티롤은 이탈리아 소속인데, 고유한 언어를 지금도 지키고 있어서 특별한 정취를 맛볼 수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와 접경을 이루는 베네치아안쪽의 내륙지역도 고유한 문화와 음식으로 인기가 있다. 베로나를 중심으로 한 베네토 지방은 훌륭한와인과 유서 깊은 유적지(로마시대부터 있던 야외음악당이 베로나 시내에 있다)로 많은 호사가를 불러모은다.
사진/ 박찬일
달걀노른자를 넣은 반죽으로 만든 ‘토르텔리니’는 맑게 뽑은 콩소메에 넣어 만둣국처럼 먹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을 들 수 있다. 이탈리아 중북부를 가로지르는 띠처럼 되어 있는 이 지대는 부유한 이탈리아의 풍광을 그대로 노출한다. 포(Po) 강을 따라 곧은 길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차림새는 우아하다. 로마와 밀라노에 들끓는 야바위꾼도 보기 힘들다. 솔직히 필자는 로마와 밀라노에 가는걸 싫어한다. 거칠고 예의 없는 야바위꾼들이 너무 설치기 때문이다. 거의 관광이 안 될 정도로 달라붙는다. 한번은 조롱까지 하는 아랍계 야바위꾼과 주먹다짐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다.
필자 생각에는 가장 부티(?)나고 여유 있는 동네가 에밀리아로마냐 주가 아닌가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주의 주도인 볼로냐는 이탈리아 소득 1·2위를 다투는 도시다. 그런데 이 지역이 바로 이탈리아 미식의 본고장이다. 이 주의 한가운데에 있는 파르마(Parma)라는 도시에는 슬로푸드에서 후원하는 이탈리아 미식 과학대학이 있다. 볼로냐는 움베르토 에코라는 세계적 기호학자 겸 소설가가 오래 머물고 있는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세계 최고(最古) 대학인 볼로냐 대학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고, 은퇴 후에도 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 유명한 것으로는 ‘볼로냐 세계아동도서전’이다. 국내 출판업계 상당수의 인사가 이 도서전을 방문할만큼 저명하다.
그런데 볼로냐는 역시 먹거리로 가장 유명하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볼로네제 스파게티’가 바로 이곳에서 파생했다. ‘볼로네제’란 문자 그대로 ‘볼로냐식’이란 뜻이다. 그런데 정작 이 도시에서 이 스파게티를 사먹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딱딱한 건조 면 스파게티는 이 도시에서 잘 먹지 않는 까닭이다. 안 먹는 정도가 아니라 살짝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런 스파게티는 남부 사람들이나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볼로냐는 원래 부유한 데다 지역적 환경 덕분에축산업과 양계업이 발달했다. 그래서 요리에 축산물을 풍부하게 사용한다. 달걀을 풀어 밀가루와 배합한 후 반죽한 ‘파스타 프레스카(pasta fresca)’가 명물이다.
우선 하얀색의 밀가루를 봉긋한 산처럼 대리석 판에 쌓는다. 화산처럼 분화구를 만든 후 거기에 달걀을 깨뜨려 넣는다. 보통은 노른자와 흰자를 모두 사용하지만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노른자만 넣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계란은 사료 때문인지 아주 노랗다. 그래서 노른자를 옐로우라고 부르지 않고 ‘로쏘(rosso; 레드란 뜻)’라고 한다. 주황색의 노른자로만 반죽하면 면이 아주 노랗다 못해 붉은 색을 띠어 매력적이다. 그렇게 노른자를 넣고는 지역 특산물인 파르메산 치즈를 조금 갈아 넣고 소금과 올리브유를 넣어 힘차게 반죽한다. 5분 정도 치댄 후 냉장고에서 두 시간 숙성해 반죽을 밀기 시작하는데, 역시 아주머니나 할머니 솜씨가 일품이다. 우리가 장터에 가면 종종 사먹거나, 어머니와 할머니가 홍두깨를 들고 직접 민 칼국수를 선호하듯 이들도 마찬가지다. 두툼하고 길다란 봉으로 반죽을 미는데, 솜씨가 정말 예술이다. 이들은 그냥 파스타라고 하지 않고 ‘파스타 아르티지아날레(pasta artigianale)’ 즉 장인(匠人)파스타라고 부르면서 아주 우대한다. 이런 면은 건조 스파게티의 몇 배를 식당에서 받는다.
고소하고 짭짤한 감칠 맛 나는 ‘파스타 프레스카’
이렇게 반죽해 면을 만드는데, 칼로 또박또박 썬다. ‘탈리아텔레’라고 부르는, 완전히 칼국수다. 그런 다음 삶아서 전통의 라구 소스(즉 볼로네제 소스)에 버무린 후 파르메산 치즈를 듬뿍 뿌려서 먹는다. 이것이 바로 진짜 ‘볼로네제 파스타’다. 그러므로 볼로네제 스파게티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면이 입에 착착 달라붙고, 씹으면 고소한 계란과 짭짤하고도 감칠맛나는 파르메산 치즈의 폭탄이 이어진다. 희한하게도 이 파스타는 먹으면 먹을수록 입맛이 더 당기는 느낌이 있다. 결국 과식하게 되는데, 이 도시를 뚱보(lagrassa)라고 부르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곳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생각보다 뚱보는 많지 않고 오히려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이 흔하다.
파스타 프레스카는 꼭 국수 같은 형태로 존재하진 않는다. 우리도 잘 아는 라자냐(lasagna)나 만두 같은 형태로도 자주 먹는다. 라자냐는 층층으로 얇게 밀어서 넓적하게 편 계란반죽을 쌓고 사이사이에 고기 소스나 리코타 치즈 소스를 넣어 오븐에 굽는 요리다. 이것이 나중에 미국으로 가서 크게 히트치면서 세계적 요리가 되었는데, 제대로 만든 것을 먹어보려면 역시 이곳에 와야 한다. 이 라자냐 역시 먹다보면 언제 다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금방 먹어치우게 된다.
이 주가 이런 멋진 음식을 낳게 된 데에는 지역적·환경적 요인이 큰 듯하다. 우선 포 강의 넉넉한 흐름이 주 사이를 관통한다. 보통 이탈리아는 구릉이 많다. 그래서 목축하기에 쉽지 않다. 물도 부족하고 경사지는 소를 키우기에 좋지 않다. 그런데 이 지역은 초지가 많고 평평하며 기후도 좋다. 물을 보급하기 좋아 소를 키우기에 최적이다. 그래서 유럽 전체적으로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은 소 목축의 남방한계선이 라고 말한다. 덴마크에서 시작되는 목축 라인이 마무리되는 남쪽이다. 소가 많으니 우유가 많고 고기도 많으며, 계란도 흔하다. 평지에 밀을 기르기도 좋다. 최상의 파스타를 낳을 수 있는 지역이 된 것이다. 이 지역을 여러 번 취재했는데, 해물을 먹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필자는 가보지 못했는데, 역설적으로 해물 전문식당이 아주 인기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 건강식 바람이 불면서 적색육보다 해물을 즐기려는 흐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진/박찬일 배꼽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에밀리아로마냐의 전통 만두 ‘토르텔리니’.
에밀리아로마냐의 만두는 독보적이다. 손으로 일일이 빚기도 하는데, 정말 고단한 노동이다. 필자는 이탈리아에서 일할 때 매일 만두 1200개씩을 만든적이 있다. 1인분에 30개를 주는 작은 만두였는데, 이것을 40인분 가량 만든 것이다. 작은 만두라 손 끝에 예민하게 감기기 때문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넓게 편 계란반죽을 동그랗게, 또는 네모나게 자른 후 햄과 치즈로 만든 소를 넣어 마치 여자의 배꼽처럼 만든다. 이것이 바로 ‘토르텔리니’라는 전통 만두다.
이 만두는 배꼽이라는 아주 섹시한 애칭이 있다. 실제 배꼽과 닮았다. 여기에 얽힌 일화가 있다. 한 만두 기술자가 유부녀와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배꼽 모양을 닮은 만두를 만들었다. 어느 날 유부녀의 남편이 그 만두를 보고 대번에 불륜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그녀의 배꼽이 아주 섹시하고 특이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설로는 비너스의 배꼽을 흉내 낸 것이라고도 한다. 어찌 됐든 이 만두는 만드는 요리사에게는 고통을, 먹는 이에게는 기쁨을 준다. 라구(미트 소스)에 버무려 내기도 하고, 그냥 버터에 굴려서 먹기도 한다. 맑게 뽑은 콩소메(이탈리아어로는 ‘브로도’)에 넣어 만둣국처럼 먹기도 한다. 사골을 쓰는 우리의 만둣국과 상당히 비슷하다. 이 만둣국은 추울 때 몸을 덥히고, 보할 때 주로 먹는다고 하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만두류는 만들기에 따라 아주 다양한 모양이 있다. 반달로 접어서 하면 메차루나(반달), 동그랗게 하기도 하고 마치 중절모처럼 만드는 것도 있다. 좀 크게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우리의 이북식 만두 같은 큰 것은 없다.
만두류 중에 가을·겨울의 별미가 있는데, 이것은 ‘모데나’ 라는 지방의 특산이다. 에밀리아로마냐 지도에서 가운데 위치하는 모데나는 위대한 테너 가수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이 도시에서는 기존의 극장을 파바로티를 기념해서 ‘테아트로 파바로티’로 개명을 했을 정도다. 이 만두는 가을 호박의 붉은 살과 치즈를 섞어 넣고 만든다. 에밀리아로마냐에서 꼭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물도 아니다. 바로 햄이다. 이탈리아는 알다시피 코스요리를 먹는다. 전채-파스타-고기나생선이 기본 구성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전채로 햄을 내고 햄과 고기 넣은 파스타를 먹은 후 다시 고기를 먹는다. 더러는 햄이 메인 요리로 나올 때도 있다. 만약 이 지역에서 기본 제공 메뉴를 먹을 경우 햄에 물렸다면 미리 얘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종일관 햄과 고기로 도배(?)를 한다. 햄도 그냥 햄이 아니다. 날것과 익혀서 먹는 햄이 공존한다.
독보적 맛의 전통 만두 ‘토르텔리니’
우선 익힌 햄을 보자. 대표적인 게 볼로냐의 명물 ‘모르타델라’다. 소시지 모양으로 생겼는데, 크기가 거대하다. 직경이 한 자가 넘는 것도 흔하다. 돼지의 잡다한 부위를 섞고 비계를 듬성듬성 박아 넣어 익힌 이 햄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흐른다. 내장을 섞기도 하는데, 위(오소리감투)가 아주 인기 있다. 쫄깃한 식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도 한국처럼 돼지를 잡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알뜰하게 먹는다. 턱살은 소금에 절여 베이컨처럼 양념으로 쓰고 볼 살은 구워 먹으며, 족발도 요리한다. 겨울에 돼지를 잡아 김장하는 습관이 오랫동안 남아 있다고 한다. 한 시민의 집에서 그 장면을 담은 몇 해 전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제주도의 ‘돗추렴’(친구나 친지끼리 돈을 모아 돼지를 잡아 나누는 의식)과 흡사하다. 돼지를 잡아 매달아 피를 빼고 내장을 수습한 후 곧바로 창자에 피와 고기를 갈아 넣어 살라미 소시지(한국의 순대)를 만드는 것도 제주도와 아주 비슷하다. 비계에 소금을 쳐서 지하 저장고에 숙성시킨 후 양념으로 쓴다.
사진/박찬일 이탈리아에서는 겨울에 돼지를 잡아 김장하는 습관이 있다. 제주도의 ‘돗추렴’과 흡사하다.
이 밖에 익힌 고기로는 프로슈토를 삶은 ‘프로슈토코토’, 돼지족발로 만든 햄인 ‘잠포네’가 있다.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소금에 절여 말린 프로슈토는 이 지역산이 세계적이다. 한 해에 700만 개를 만든다고 한다. 전국에서 쓰고, 세계에도 수출한다. 한국에도 이 지역 프로슈토가 수입된다. 보통 7㎏ 내외인데, 개당가격이 식당 납품가를 기준으로 50만원 정도 한다. 얇게 저며서 먹으면 정말 대단한 감칠맛을 보인다. 이 햄의 감칠맛은 파르메산 치즈만큼은 아니지만, 인공조미료인 MSG에 버금갈 만큼 강력한 놈이다. 그래서 이탈리아 요리사는 이것을 말려서 가루를 내어 슬쩍슬쩍 자신의 요리에 넣기도 한다. 음식 맛이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MSG를 넣는 것도 결국은 감칠맛을 더 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사진/박찬일
좌) 볼로냐의 명물 ‘쿨라텔로’. 세계 최고의 육가공품으로 부호와 유명 영화배우들이 자주 찾는다.
우) 쿨라텔로 숙성고. 이곳에서 1년 이상 숙성시킨다.
그런데 프로슈토보다 몇 배 비싼 세계 최고의 육가공품이 이곳에 있다. ‘쿨라텔로’다. 스페인 하몽과 흡사한 명품인데, 수효는 훨씬 적다. 파르마의 외곽시골인 지벨로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름도 ‘쿨라텔로디 지벨로’라고 부른다. 현지 생산소에 가봤다. 지하 저장고에 들어갔더니 주렁주렁 쿨라텔로가 걸려 있다. 1년 이상 숙성시킨다. 현지 직원은 “금이 걸려 있다”고 표현한다. 금처럼 귀하고 비싸다는 뜻이다. 쿨라텔로는 프로슈토가 돼지 엉덩이살이 주인데 반해, 종아리살을 쓴다. 단단한 살을 발라내어 소금을 치고 돼지 오줌보에 넣어 매달라 숙성시킨다. 기름이 거의 없는 부위라 맛이 없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깊은 맛이 있고 중독성이 있다. 지방이 없고 마르니 종이짝을 씹는 것 같다. 그러나 차츰 맛이 우러나오기 시작하다가 이내 폭발한다.
이 생햄은 자연조건이 있어야 숙성이 잘된다. 현장에서 겪어보면 포 강의 악명 높은 습기가 밀려와 몸이 끈적끈적하다. 육류를 말리려면 습도가 낮아야건강하게 잘 마를 것이라고 보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습도가 높은 곳에서 특유의 맛이 나온다. 건조 지하실에 한 쪽으로 창이 나 있고 그냥 포강의 바람이 훅훅 들어온다. 희한한 설계다. 또 이상한 날벌레가 날아다닌다. 이 벌레가 햄을 둘러싼 오줌보에 숙성이 잘 되도록 하는 분비물을 묻힌다고 한다. 그래서 고도의 기술력으로 공장 설비를 만들어 흉내 내도 결코 이 쿨라텔로 맛이 안 나오는 것이다. 이 명품들은 일반인은 맛보기 힘들다. 좋은 건 이미 입도선매되어 예약판매가 끝나기 때문이다. 숙성고에는 유명한 미슐랭 별 셋짜리 식당들의 이름과 스페인 왕자, 세계적 부호들과 유명 영화배우의 이름이 수두룩하게 붙어 있었다. 한국인 부호 이름도 있나 보았더니 없었다.
볼로냐 명물 ‘모르타델라’와 ‘쿨라텔로’
파르메산 치즈 숙성고. 파르메산
치즈는 보통 1년
6개월 이상 숙성한
후 출시한다.
마지막으로 파르메산 치즈를 맛보자. 파르메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파르마(Parma)라는 뜻이다. 공장에서 이 명품 치즈의 생산현장을 견학했다. 소규모로 운영되는데, 젊은 사람을 볼 수 없어 특이했다. 이곳도 점차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한단다. 장년과 노인들이 힘들게 치즈를 제작했다. 한 개에 50㎏이 넘는 치즈 덩어리를 만들고 소금 먹여서 숙성고에 쌓았다. 파르메산 치즈는 보통 1년 6개월 이상 숙성한 후 출시한다. 한국에는 대개 최소 연한에 달한제품이 주로 들어온다. 30개월 이상 숙성한 최상 제품들은 현지에서나 먹어볼 수 있다. 부수어서 입에 넣으니 처음에는 버석거리며 돌처럼 부서진다. 오래 숙성하면 아미노산이 결정화되기 때문이다. 치즈 단면을 보았을 때 하얀 좁쌀처럼 반점이 생긴 것이 오래된 것이고, 맛이 더 좋다. 보통 파르메산 치즈는 갈아서 먹는데 전채나 식후에 덩어리째 부수어 먹기도 한다. 이 치즈를 썰 때는 곱게 칼로 썰지 않고 아몬드 형태로 생긴 칼로 부수듯 크리스털처럼 조각조각 내는 게 매뉴얼이다. 피자 가게에서 흔히 보이는 파란통에 든 치즈는 이미테이션으로 오리지널 치즈의 맛에 비교하는 것은 이들에게 모욕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