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 기자의 면(麵) 이야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이탈리아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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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 한 접시 먹어보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은 없지 않을까? 그만큼 이탈리아음식은 우리에게친숙하다. 이토록 사랑 받는 이탈리아음식을 본토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어 먹고 사는지 궁금해 2010~2011년 1년 동안 이탈리아로 연수를 다녀왔다. 슬로푸드협회에서 만든 ‘미식학대학(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s)’의 1년짜리 석사과정 ‘음식문화와 커뮤니케이션(Food Culture and Communications)’을 다녔다. 이탈리아 가정에 세들어 살면서 이탈리아 친구들과 실컷 먹고 마시며 배운 일 년이었다.
그렇게 일 년을 살면서 느낀 건 ‘우리가 이탈리아 음식을 정말 모르는구나’였다. 흔하다고 자주 먹는다고, 이탈리아음식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이만한 착각도 없었다. 한국에서 듣도 보도 못한 생경한 요리가 아닌, 자주 먹었던 음식이 예상을 ‘배신’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놀라움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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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에는 볼로냐 스파게티가 없다

한국사람들이 가장 흔히 먹는 파스타가 ‘볼로냐 스파게티’일 것이다. ‘볼로냐식 미트소스 스파게티’라고도 하는, 간 쇠고기와 토마토, 여러 향신료 따위를 오래 끓인 소스를 부은 스파게티 말이다. 그런데 이 파스타의 고향 볼로냐(Bologna)에는 ‘볼로냐 스파게티’가 없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리냐 하겠지만 사실이다.
볼로냐는 이탈리아에서 최고의 미식 도시로 꼽힌다. 오죽하면 별명이 ‘뚱뚱한 도시(la grassa)’이기도 하다. 볼로냐를 주도(州都)로 하는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주는 이탈리아에서 음식이 가장 풍요로운 지역으로 인정받는다. 한반도에 빗대 말하면 볼로냐는 전주, 에밀리아 로마냐는 전라도이다.

볼로냐식 미트소스는 이탈리아말로 ‘라구(ragu)’라고 부른다. 라구란 고기를 넣어 만든 걸쭉한 소스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볼로냐식 라구’라는 뜻인 ‘라구 알라 볼로네제(ragu alla Bolognese)’라고 불러야 한다. 도시별 지역별로 여러 라구가 있지만 볼로냐가 가장 유명해서 그냥 라구라고 하면 대개 볼로냐식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볼로냐에서 이 라구는 절대 스파게티에 먹지 않는다.
스파게티는 건조 파스타이다. 두럼(durum)밀이라고 하는 경질 소맥을 빻은 가루를 물과 반죽해서 국수를 뽑은 다음 장기간 보관 가능하도록 딱딱하게 말린 국수이다. 건조 파스타는 시칠리아에서 만들기 시작해서 나폴리에서 큰 산업으로 발전했다. 시칠리아도 나폴리도 이탈리아 반도 남쪽이다. 그래서 건조 파스타는 과거 남쪽에서 주로 먹었다.
볼로냐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다. 북부에서는 건면보다 생면을 즐겨 먹는다. 흔히 ‘프레시 파스타’라고 하는 종류 말이다. 밀가루도 두럼밀이 아니라 칼국수나 빵 만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연질 소맥로 만든다. 물로 반죽하기도 하지만 달걀에 반죽해 만든 파스타를 선호한다. 달걀을 써야 파스타 표면이 매끄럽고 식감이 좋다.

우리도 그랬지만 옛날 이탈리아에서도 달걀은 쉬 먹을 수 있는 값싼 음식이 아니었다. 귀족들이나 축제 때 달걀로 반죽한 파스타를 먹고, 평민 그리고 평소에는 물로 반죽한 파스타가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남부보단 북부가 잘 살았기 때문에 달걀 파스타를 해먹을 수 있었다. 특히 에밀리아로마냐는 달걀 생면으로 유명하다.
그런 에밀리아로마냐의 중심 볼로냐에서 건면을 즐길 리 없다. 특히 볼로냐의 상징과도 같은 라구를 스파게티 따위 건면과 먹는다는 것은 신성모독이나 다름없다. 볼로냐 시민들은 라구를 반드시 생면에 먹는다. 생면 중에서 탈리아텔레(tagliatele)와 가장 어울린다고 확신한다. 길고 납작한 면발이 우리 칼국수와 비슷한 파스타로, 볼로냐를 대표하는 파스타이다. 한국에서 흔히 ‘페투치니’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알려진 페투치네(fettucine)와 거의 같다. 둘 다 길고 납작한 면발이 우리 칼국수와 비슷하다.

게다가 이탈리아에서는 어떤 파스타는 어떤 재료와 먹느냐에 대한 일종의 규칙이 있다. 대개 고기나 크림으로 만든 소스는 생면과, 해산물이나 채소가 주재료인 소스는 건면과 먹는다. 규칙을 어긴다고 경찰이 체포하거나 감옥에 가지는 않지만, 따르지 않으면 어딘가 어색하다고 이탈리아인들은 무의식적으로 느낀다. 그러니 이탈리아인들에게 고기로 만드는 라구를 스파게티와 먹는다는 건 여러 관점에서 이상한 것이다.
볼로냐에는 없지만 로마나 밀라노 따위 대도시에는 볼로냐 스파게티를 파는 식당이 있다. 하지만 거기서 이탈리아사람은 보지 못할 것이다. 미국이나 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식당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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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보나라에는 크림이 안 들어간다

카르보나라(Carbonara)는 한국에서 크림소스 파스타의 대명사로 인식된다. 그런데 카르보나라는 원래 크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다.
카르보나라는 카르보나이오(carbonaio)에서 비롯됐다. 카르보나이오는 ‘숯쟁이’라는 뜻이다. 로마 옆에는 아부르조(Abruzzo)라고 하는 주가 있다. 험준한 산악지역이다. 여기서 숯쟁이들은 나무를 잘라 숯을 만들어 로마에 가져다 팔았다.
허기진 숯쟁이들이 숯불을 피우고 프라이팬을 올린다. 주사위 모양으로 작게 썬 관찰레(guanciale)를 프라이팬에 볶는다. 관찰레는 돼지 볼살을 소금에 절여 훈제한 것이다. 관찰레가 없으면 이탈리아식 베이컨인 판체타(pancetta)를 써도 상관 없다. 파스타는 스파게티 따위 건면을 사용한다. 파스타가 익으면 프라이팬에 넣고 달걀을 붓고 양젖으로 만드는 페코리노치즈를 넉넉히 뿌린다. 달걀은 주변 농가 아니면 나무 위 메추라기 둥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숯쟁이들이 숲에서 간단하게 해먹던 파스타가 카르보나라라는 이름으로 로마에 알려졌고, 전국적으로 퍼졌다. 레스토랑 요리사들이 더욱 풍요롭고 고소한 맛이 나도록 카르보나라에 크림을 더하기도 했다. 그러니 카르보나라에 크림을 넣으면 절대로 안된다거나 하지는 않다. 하지만 달걀에 크림을 더하기도 하는 것이지, 한국처럼 달걀은 아예 빼고 크림으로만 소스를 만들면 카르보나라라고 할 수 없다. 마치 김치는 넣지 않고 고춧가루만 넣어 김치찌개를 끓이는 것만큼,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황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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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는 이탈리아에서도 낯선 음식이다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건 파스타뿐 아니다. 피자도 마찬가지였다. 미식학대학 대학원에서 맥주와 초콜릿, 훈제가공육을 강의한 미르코 마르코니(Marconi) 교수와 학생들이 피자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대신하는 날이었다. 마르코니 교수는 “내 어머니는 아직까지 피자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해 외국인 학생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 그는 “피자는 우리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에게도 외래의(foreign) 음식”이라고 덧붙였다.
이탈리아에서 피자가 처음 문헌에 등장하는 건 16세기 전설적 요리사 바르톨로메오 스카피(Scappi·1500경~1577년)가 쓴 쓴 요리책이다. 요즘 피자와는 전혀 다르다. 고기와 견과류, 말린 과일이 풍성하게 들어간 일종의 파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양과 맛의 피자는 19세기 중반에야 만들어졌다. 나폴리의 ‘피쩨리아(pizzeria)’라 부르는 피자가게들이 문 열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19세기 중반까지 피자는 이탈리아 남부, 그중에서도 거의 나폴리에서만 먹었다. 로마, 피렌체 등 중부 이북으로는 피자를 먹어본 것은 고사하고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음식사학자들은 북부에 피자가 들어온 건 미국을 통해서라고 본다. 1905년 시칠리아 출신 이민자가 뉴욕에 ‘롬바르디스(Lombardi’s)’를 열었다. 미국 최초의 피자가게이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이민자들만 먹었다.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상륙한 미군 병사들이 피자를 맛봤고, 미국에 돌아가서도 피자를 찾았다. 피자가 미국사회 전반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2차 대전 직후 이탈리아에서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코카콜라, 할리우드 영화, 청바지 등 미국의 모든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됐다. 그런 미국인이 즐겨 먹는 피자가 원래 이탈리아 음식이었다니. 특히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탈리아 전통 음식이 아닌, 새로운 청년문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한국에선 피자를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길에서 서서 먹거나 허름한 식당에서 후딱 허기를 때우는 간단한 음식이다. 그리고 피자에는 맥주나 콜라를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라구를 스파게티에 먹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강제하지 않지만 누구나 그렇게 한다. 마르코니 교수는 “피자가 이탈리아 전역에 퍼질 때 맥주와 콜라도 퍼졌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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