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천의 얼굴’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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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탈리아는 매일 스파게티만 먹고 살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국토가 꽤 넓고 지역색이 강해서 음식문화도 다채롭다. 통일된 지 150여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탈리아다운’ 음식문화라고 해야 할 무엇도 아직 뚜렷하지 않다. 된장찌개나 김치 같은 국가나 민족적 음식도 내세울 만한 것이 드물다.

그나마 파스타가 전국적으로 먹는 음식인데, 소스로 지역의 색깔이 크게 달라진다. 치즈만 하얗게 뿌려 먹는가 하면 토마토소스가 끊어지지 않는 동네도 있다. 고명도 다채로워 올라가지 않는 재료가 없다. 선인장 열매를 넣는 남부 시칠리아 파스타, 멸치젓갈을 쓰는 나폴리 인근의 스파게티, 풍성하게 레드와인을 넣어 만드는 북부의 구릉지대 파스타, 과일을 넣어 만드는 파스타도 있다.

파스타란 정말 어떤 소스를 쓰는가에 따라 전혀 얼굴이 달라지는, 일종의 백지 같은 음식이다. 물감과 예술적 취향에 의해 다른 결과물을 낸다. 그래서 지역과 나라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음식으로 변한다. 일본에서는 고추냉이와 간장 소스, 명란 파스타를 탄생시켰다. 김 가루와 다시마소스 파스타도 있고 심지어 ‘우메보시’ 파스타도 먹는다. 일본식 된장인 ‘미소’ 스파게티도 있고, 다양한 해산물을 얹은 파스타도 흔하게 볼 수 있다(성게의 내장 파스타는 그중 걸작에 속한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고추장은 물론 김치 스파게티도 여러 식당에서 보았다. 걸쭉하고 진한 소스에 말아내는 ‘짬뽕 스파게티’는 직장인 밀집지역의 파스타집에서 빠지지 않는다. 어제 술 좀 하신 분들의 해장 파스타(?)로 인기가 높다. 뜨끈뜨끈하고 매운 국물이 파스타라는 이질적 기운을 줄여주고, 짬뽕처럼 친근한 코드를 이용해 입맛을 당겨주기 때문이다. 이런 퓨전 파스타는 중장년 직장인들도 어린 후배들을 따라 파스타집에 갈 수 있게 만드는 음식이 되었다.

음식이란 자고로 물을 건너면 제각기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그것은 역사가 이미 보여주고 있는 익숙한 방식이다. 앞서 말한 짬뽕 파스타도 일본식 찬폰과 중국식 초마미엔이 한국식 융합 버전으로 뒤섞인 동서양 통합형 음식인 것이다. 이탈리아 상호의 파스타집에 앉아 토마토와 고춧가루 육수에 이탈리아 면을 넣고, 짬뽕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가진, 중국식의 요리방법으로, 한국식 미각의 음식을 먹는 이 장면은 아주 흥미롭지 않은가.

이탈리아의 지역 파스타 가운데 개성 강한 것을 꼽으라면 먹물을 들 수 있다. 베네치아는 앞바다인 아드리아해에서 잡은 오징어 먹물로 파스타를 만든다. 작은 오징어를 잡아 다리를 잡아채면, 내장이 나오는데 형광색의 먹물주머니가 붙어 있다. 아주 적은 양인데, 적에게 뿜는 용도로 쓰는 것이라 농도가 아주 진하고 강렬한 기운이 있다. 두어 마리분의 먹물로도 한 그릇의 파스타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단, 오늘 잡은 오징어에서 따낸 먹물이라야 짭짤하고 풍성하며 아릿한 자극이 있는 맛을 낼 수 있다. 입가에 검은 소스를 묻혀가며, 바다의 깊은 맛을 먹는 이 음식은 베네치아의 상징이 되었다.

“먹물 파스타가 워낙 맛있어 3년째 가는 레스토랑. 나는 오늘은 아귀 파스타를 먹었다”는 페이스북 글을 남기고, 베네치아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한 저널리스트가 있다. 이른바 ‘땅콩집’ 열풍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독보적인 건축 관련 기사로 드높은 구본준이다.

출처 : 경향신문 (2014-11-13)
링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411132039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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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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