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 국수주의자 박찬일

‘노른자만 40개’ 파스타는 무슨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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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왔다. 국수의 본고장 중 하나다. 개도 파스타를 먹는 나라다.(고양이는 모르겠다.) 물론 군인도 파스타를 먹는다. 학교급식도 물론이다. 교도소 재소자들이 크림 파스타를 주지 않는다고 폭동을 일으킨 적이 있는 나라다. 그러자 법무장관이 일갈했다. “토마토미트소스나 먹으면서 반성하라!”

한국과 다른 파스타 문화인 건 다들 알 거다. 한국은 파스타가 아니고 ‘파슷하’를 먹으니까(응?) 여튼 피클 안 먹는다는 거, 다들 알 거다. 알고 있지만 실험을 해봤다. 밀라노는 한국식 음식문화가 조금 있는 곳이다. 짜장면과 짬뽕만 파는 한국식당(중식당?)도 있을 정도다. 그래도 피클 주는 데는 없다. 동네 이탈리아식당에 가서 피클 달라고 했더니, 엄청 고민한다. 이탈리아 특유의 난감한 제스처(손가락 물어뜯기, 어깨 움츠리기 등)를 한다. 그러더니 빙고! 버섯 피클을 가져온다. 식초와 소금, 오일에 절인 놈이다. 이탈리아에선 버섯이나 채소를 절인 걸 즐겨 먹는다. 물론 우리처럼 반찬이 아니다. 나가면서 보니 피클 값을 청구했다. 5유로. 약 8000원이다. 한국 같으면 주인 나오라고 해서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 단무지 쪼가리에 국수 값을 받다니, 뭐 이러면서. 다행인 건 버섯 피클 맛은 아주 좋았다. 불행인 건 파스타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 피클은 위대하다. 짭짤하고 아삭한, 한국인 취향이다. 피클 먹는다고 뭐 문제인가. 게다가 공짜인데. 물론 많이 드시면 좋지 않을 듯. 염도와 당도 다 높다.

다음으로 다른 문화는 건면(스파게티류)만큼 생면을 많이 먹는다는 점이다. 생면은 다채로움이 있어 식당의 개성을 상징한다. 요리사들은 생면에 자기만의 요리법을 채워 넣는다. 자존심을 건다. 한 접시에 5만~6만원을 받기도 한다. 맛도 보드랍다. 이 파스타의 핵심은 반죽할 때 계란을 넣는다는 것이다. 물 대신 넣은 계란은 촉촉하고 고소함을 준다. 아주 진하다. 한국에서는 별로 인기 없다. 파스타의 첨병이 바짝 마른 스파게티였다. 공장에서 만든다. 생면은 칼국수처럼 몰캉하다. 색이 노랗고 아주 예쁘다. 계란을 어떻게 넣는가 보면 감탄이 나온다. 공식 레시피에는 보통 밀가루 1㎏에 계란 10개다. 그런데 대부분의 요리사들은 비장의 배합법을 가지고 있다. 노른자만 왕창 넣는 것이다. 아예 ‘노른자만 40개’라는 파스타 이름도 있다. 무려 미슐랭가이드 별이 달린 식당에서 봤다. 한 접시에 20유로가 넘는다. 밀가루 1㎏에 노른자 40개를 넣었다는 뜻이다. 대충 이 정도면 반죽이 된다. 고소함이 하늘을 찌른다. 한국에서 나도 해본 적 있다. 색깔, 뜻밖에도 별로 안 예쁘다. 산란 닭이 먹는 사료 차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닭이 옥수수를 많이 먹어 노른자가 아주 샛노랗다. 그래서 노른자를 뜻하는 말도 보통 ‘로소’(rosso·빨강)라고 일컫는다. 노랗다 못해 빨갛다는 호들갑이다.

우리 국수 역사에도 난면이란 게 있었다. 각종 의궤에 등장한다. 유명한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에도 나온다. 물론 ‘卵麵’이다. 양지머리 육수에 끓여 먹는다. 영양가가 듬뿍 들었을 것이다. 중국에서도 종종 노란 면을 보게 되는데, 계란면인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탄산나트륨을 넣어 만든 면이다. 소다 말이다. 알칼리 성분이 면의 단백질과 반응해서 노란색을 띠게 된다.

계란까지 넣고도 더 맛있게 하려고 요리사들은 머리를 싸맨다. 그렇게 진한 면을 육수에 삶아낸다. 면에 육수가 흡수되어 맛이 더 강해진다. 면 반죽에 처음부터 치즈 가루를 넣기도 한다. 감칠맛이 터진다. 파마산(파르메산) 치즈는 감칠맛의 황제다. 다시마만큼은 아니지만 고기보다는 더 강하다. 맛있는 것을 먹겠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한 그릇의 접시에 쾌락의 모든 요소를 넣으려고 한다. ‘미원’도 동원된다. 설마 이탈리아도? 그렇다. 마트에서 파는 분말이나 고체 육수에는 ‘글루타마토 소듐’이라고 적혀 있다. 글루탐산나트륨이란 뜻이다. 천연음식만 먹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이들도 감칠맛의 황제를 즐기는 것이다. 욕망은 죄가 없다.
앞에서 크림 파스타 운운 대목은 물론 농담이다. 만우절 언저리니까. 실제로 크림 파스타를 달라고 그랬을 리가 없다. 이탈리아에선 그런 파스타는 거의 먹지 않는다. 특히 한국식의 넉넉한 크림소스는 절대로! 하지만 우유도 남아돈다는데 우리는 맘껏 먹어볼까.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


출처 : 한겨레 (2014-04-02)
링크 :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630980.html#csidx19e4b53e896fb3a8308a930d09164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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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박찬일, #이탈리아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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