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서울에는 경양식집이 많았다. 1980년대 후반까지의 일이다. 요즘은 어디서나 파는 돈가스가 주력 메뉴였다. 일종의 간이 양식집 형태인데, 일본에서 온 형태였다. 생선가스, 비후가스 등의 메뉴도 있었다. 비후가스란 비프(beef cutlet)의 일본식 발음이다. 이곳에서 파는 탄수화물 중에 스파게티가 있었다. 나폴리탄이라고 하는 일본식 이름을 그대로 쓰는 곳도 있었고, 그냥 토마토 스파게티나 미트 스파게티란 말을 썼다. 나폴리탄이란 napolitan, 즉 나폴리식 스파게티란 뜻이다. 실은 나폴리와는 별 상관이 없다. 일본이 전쟁에 진 후, 연합군 사령부가 진주했다. 이때 요코하마에서는 그랜드 호텔을 징발하여 연합군 사무실로 썼다. 이들이 먹을 음식을 호텔에서 제공하려고 했는데, 전쟁이 진 뒤라 재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미국 보급품인 케첩과 스파게티를 이용해서 스파게티를 만들고, 이것에 나폴리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토마토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상징이다. 그러나 케텁은 미국을 상징한다. 어쨌든 그 음식이 널리 일본 전역에 퍼져서 경양식집이나 스파게티하우스, 심지어 카페나 다방의 메뉴가 되었다. 지금도 역사 깊은 다방에 가면 이 메뉴를 판다.
이 스파게티가 한국에도 전해졌는데, 보통 두 가지 버전으로 팔렸다. 한 가지는 토마토케첩과 소시지 등을 볶고, 스파게티를 삶아 버무린 후 가짜 파르메산 치즈를 뿌려내는 방식, 다른 한 가지는 ‘그래도 양식집에 왔으면 고기 종류를 먹어야 한다’는 한국인의 고정관념에 맞게 미트소스(토마토케첩과 다진 돼지와 소고기를 섞은 것)를 만들어 팔았다. 한국의 스파게티 문화는 이렇게 퍼져 나갔고, 90년대 중후반부터 조금 더 이탈리아에 가까운 스파게티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국인에게 스파게티=파스타라는 등식이 생긴 건 아마도 이런 역사적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한국에 스파게티가 전해진 건 훨씬 더 옛날이다. 한국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1888년 개업, 현재도 인천 중구청 앞에 부지가 남아 있다)과 서울 최초의 호텔인 손탁호텔(1902년 중구 정동에 세워졌다)에서도 스파게티를 팔았다. 아마도, 당시 고종과 왕비 등도 이 음식을 먹었을 확률이 높다. 외국 사절을 자주 접하고, 만찬을 베푸는 데 외국음식이 많이 올라왔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요리는 대개 중국 상하이에서 온 일부 유럽인과 중국인들이 담당했다고 한다.
스파게티는 거의 100퍼센트 수입을 한다. 이탈리아산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도 생산을 한다. 밀가루야 수입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고, 스파게티 제조는 이미 그다지 비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파게티는 기본적으로 물과 주로 경질밀을 배합하고 열처리 한 후 출시하면 된다. 이때 어떤 설비를 썼느냐, 밀가루의 품질과 제조 노하우가 개입된다. 또 스파게티란 건조된 것을 주로 이르지만, 삶아서 수분이 있는 상태로 유통되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삶지 않고 수분이 있는 상태로 ‘생면’을 유통하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스파게티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다른 경우가 몇 가지 있는 셈이다. 다시 정리하면, ①스파게티는 현대에 와서 처음 먹은 것이 아니다 ②스파게티는 한국에서도 만든다 ③스파게티는 마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면이나 숙면 상태로도 유통할 수 있다. 등이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있다. 스파게티는 과연 이탈리아에서도 많이 먹을까. 답은 예스다. 물론 한국처럼 파스타=스파게티라는 등식은 없지만 많이 먹기는 한다. 이탈리아 파스타는 스파게티처럼 국수형인 것과 짧은 모양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국수형의 대표 주자가 바로 스파게티다. 좀 굵은 것, 가는 것 등 굵기가 다르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혹시 마트에서 스파게티처럼 생겼는데 스파게티라고 부르지 않고 ‘베르미첼레’나 ‘버미셀리’라고 써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vermicelli라고 쓴다. 베르미첼리는 이탈리아어 발음이고 버미셀리는 영어 발음이다. 그럼 두 종류는 서로 다른 것일까. 답은 ‘같은 것’이다. 원래 이 국수는 베르미첼리라고 불렸다. 길다란 벌레 모양이라는 뜻이다. 파스타는 사물의 모양을 따서 붙인다. 펜촉처럼 생겼다고 해서 펜네, 용수철이라고 해서 푸실리, 나비를 닮았다고 파르팔레 등이다. 물론 이탈리아어다. 이 기다란 역사적인 국수는 오랫동안 베르미첼리라고 불렀다. 그래서 지금도 그렇게 포장지에 써서 판다. 스파게티와 모양을 비교해봐도 아무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면 왜 이름이 스파게티라고 바뀌었을까. 이 부분은 워낙 설이 많아서 정답이 없다. 마치 설렁탕의 어원처럼 말이다(설설 끓는다 해서, 임금이 농사를 주관하는 제사터인 선농단의 와전이다, 눈(雪)처럼 하얀색의 국물이 진해서(濃) 설렁탕이었다, 고려 시기 몽고의 술래라는 말이 변한 것이다 등 4가지나 된다).
일단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수출(輸出)설이다. 외국에 수출해야 하는데 ‘벌레’라는 이름은 식욕을 떨어뜨린다. 마치 카놀라유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카놀라유는 영어로 rapeseed oil이다. rape라는 낱말이 좋지 않으니까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 팔았다는 게 정설. 그래서 기다란 실, 줄이라는 뜻을 가진 스파게티(spaghetti)로 개명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안토니오 비비아니라는 19세기 이탈리아 요리사가 요리 책을 쓰면서 이 낱말을 처음 썼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베르미첼리보다 더 가는 국수여서 실이란 뜻의 스파게티라고 썼다는 설도 있다.
스파게티는 아시아의 소면(수연면, 가늘게 뽑거나 늘인 국수)와 세계적으로 쌍벽을 이루는 긴 국수다. 그것이 동서양이 만나면서 서로 뒤섞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스파게티는 한국에 들어와서 이탈리아식, 일본식, 한국식, 미국식의 여러 버전으로 요리되어 팔린다. 이탈리아인 중에 이런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참으로 신기한 스파게티의 변천사라고 할 수 있다.
/글 =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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