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게티와 파스타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건 이제 대개 알게 됐다. 파스타 >> 스파게티란 뜻이다. 파스타는 워낙 종류가 많다. 대략 200여 종이 지금도 유통된다. 파스타는 지방별로 다채롭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먹는 스파게티는 주로 남부 지방에서 먹었다. 점차 북부에도 퍼져 나갔지만, 여전히 북부에서는 더 넓적한 면을 좋아한다. 파스타는 생면과 건면으로도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 국수와 다른 바 없다. 생면은 유통기한이 짧고, 대개는 걸쭉하고 진한 소스랑 어울린다. 건면은 유통기한이 길다. 보통 3년 이상인데, 실은 10년이 되도 상하는 법이 드물다. 수분함량이 아주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른 파스타를 옛날 사막을 건너던 대상(隊商)들도 가지고 다녔다. 가볍고, 안 상하고, 맛도 좋으며, 칼로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파스타가 요즘처럼 인기 수출상품이 된 건 보존기한이 길고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것도 관련이 깊다. 만약 냉장 수송을 해야 하거나, 더운 지방에서 상해버린다면 수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파스타를 삶는 방법 중에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바로 알 덴테(Al dente)다. 치아에 부딪힌다는 뜻이다. 아주 옛날에는 이탈리아에서도 국수를 푹 삶아 먹었다. 점차 알 덴테로 삶으면서 살짝 덜 익은 듯하게 먹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오래 씹어서 침의 분비를 촉진하고, 씹는 맛을 강조하면서 즐거워졌다. 연료도 절약하게 되었다. 당시 스파게티를 먹는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지금처럼 바로 삶아서 금방 곧장 서비스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나폴리 길거리에서는 스파게티 포장마차가 많았다. 거리에서 그냥 솥을 놓고 석탄이나 장작으로 불을 때서 스파게티를 삶았다. 마늘과 기름, 소금을 듬뿍 뿌려서 팔았다. 이때 손으로 그냥 국수를 먹었다. 그러니 삶은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국수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온도에 이르러야 했다. 이렇게 하면, 푹 삶은 국수는 퍼져서 먹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점차 요리사들은 국수를 덜 삶아서 좀 놔두어도 퍼지지 않도록 조절했다. 이런 관습이 알 덴테를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알 덴테는 건면만 그런 것이므로 덜 익혀 먹어도 상관없지만, 생면은 날 밀가루가 들어 있으므로 덜 익히는 정도(알 덴테)를 조심스레 할 뿐이다. 생면의 알 덴테는 익히는 정도로 조절할 수 있지만, 반죽 상태로도 조절하기도 한다. 물을 조금 넣어 단단하게 반죽하면 더 쫄깃하고 딱딱한 맛을 표현할 수 있다.
내가 한국에서 처음 이탈리아 음식 요리사로 일하기 시작했던 2002년 무렵에는 알 덴테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 국수처럼, 쫄깃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익혀서 팔았다. 그래서 더러 알 덴테를 아는 손님은 주방에 특별 주문으로 “알 덴테로 부탁해요” 하기도 했다. 물론 다수의 이탈리아식의 알 덴테라기보다 살짝 덜 익히는 정도에 그쳤다. 아주 흥미 있는 일화가 있다. 한국에는 그동안 많은 이탈리아인 요리사들이 들어와서 일했다. 신사동의 모 식당에서 유명한 이탈리아 주방장을 초빙했다. 그는 오래 근무하지 않고 한국을 떠났다. 그 이유가 이랬다.
“자꾸 스파게티가 덜 익었다고 접시가 되돌아오고 컴플레인을 하니 일할 수가 없었다.”
이런 알 덴테에 대한 일화는 한 드라마에서도 차용됐다. 성질 급한 주방장이 알 덴테로 만든 스파게티 접시가 되돌아오자 화를 버럭 내는 장면이었다. 어쨌든 요즘은 알 덴테로 파는 집이 많아졌고, 지나치지만 않으면 손님들도 즐겨 먹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평소에 일반 국수를 많이 먹기 때문에 알 덴테는 어색하다. 심지어 리조토도 이탈리아는 알 덴테로 익히는데, 한국에서는 대개 푹 삶아서 내지 않으면 화를 면하기(?) 어렵다^^.
스파게티(파스타)는 소스에 버무려 먹는 것이 당연하다. 더러 치즈만 뿌리거나, 기름만 뿌려서 먹는 이들도 있다. 스파게티의 순수한 맛에 집착하는 것이다. 또는 다이어트를 위해 소스를 빼고 먹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대개는 소스를 버무려서 먹는다. 파스타 중에 속이 뻥 뚫린 것이 있다. 부카티니, 펜네, 리가토니 등이다. 이런 파스타는 속에 소스가 충분히 빨려 들어간다. 그래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부카티니는 굵은 스파게티처럼 생겼는데, 가운데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이 파스타를 삶아서 토마토소스에 버무리면 속으로 소스가 쏙쏙 들어간다. 그래서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진한 맛이 난다.
기본적으로 스파게티는 오일 소스나 토마토소스가 많다. 남부의 주산물이기 그것인 까닭이다. 스파게티 표면을 잘 보면, 미세하게 거친 단면을 가지고 있다. 이 단면에 소스가 붙게 되어 있다. 거칠수록 더 많이 붙으므로 맛이 진해진다. 하지만 스파게티는 소스를 많이 쓰는 요리가 아니다. 대개 살짝살짝 소스가 묻을 정도로만 요리한다. 토마토 스파게티의 경우 이탈리아라면 종이컵으로 반 정도, 즉 60cc 정도의 소스면 충분하다. 한국에서 이런 스파게티를 만들면 대개는 종이컵으로 하나 이상, 더러는 2개 분량(200cc 이상)을 써서 만드는 게 보통이다. 한국은 아무래도 면 자체보다 소스의 맛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이는 짜장면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짜장면은 소스의 양이 충분하다. 흥미로운 건, 한국인이라도 우리 음식인 비빔국수를 먹을 때는 소스의 양이 적다는 점이다.
보통 소스의 양이 많은 건 넓적한 파스타를 쓸 때이다. 탈리아텔레 같은 면은 소스의 양이 많다. 우선 넓적한 단면을 가지고 있고, 대개는 생면 스타일이라 소스가 더 잘 달라붙는다. 생면은 부드럽고 축축하기 때문에 소스가 달라붙기 쉽다. 탈리아텔레 단면을 확대해서 보면 울퉁불퉁하고 미세한 얕은 구멍이 아주 많다. 여기에 소스가 붙으니까 우선 소스의 양이 많이 쓰인다. 또 소스를 묻혀서 말아 올릴 때 잘 떨어지지 않고 입까지 갈 수 있다.
이탈리아도 과거에는 소스의 양이 많았다고 한다. 점차 적어졌다가 요새는 다시 많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진하고 강한 맛을 더 좋아하는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글 =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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