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다 같은 형제,
중국의 수타, 일본의 족타, 한국의 칼국수, 이탈리아의 임파스토 아 마노.
요즘도 더러 볼 수 있지만, 중국집에 가서 탁자에 앉으면 귀가 울리도록 큰소리가 들렸다. 목청 좋은 주인이 주방에 넣는 알 수 없는 중국어 발음의 주문, 그리고 쿵쿵 울리는 거대한 소음이었다. 소음이라기보다, 마음을 밑에서 울려주는 묵직한 반복음이라고 해야겠다. 바로 반죽 치는 소리였다. 그때는 그런 말을 쓰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이걸 수타면이라고 불렀다. 처음 우리 땅에서 중국의 면이 시작되었을 때는 거의 수타면이었을 테니, 따로 ‘수타’라는 소리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 수 때릴 타. 실은 이 말은 중국인보다 일본인이나 한국인이 쓴 말이다. 그들은 주로 라면이라고 했다. 라면? 우리가 먹는 그 라면? 또는 일본인이 먹는 수제 라면? 둘 다 맞다. 라면이란 실은 ‘납면(拉麵)’이라는 뜻이었다. 이 단어의 중국어 발음이 라멘이었다. 손으로 쳐서 밀고 당겨 뽑는 면이라고 하여 라멘이었던 것이다. 더러 당긴다는 뜻의 ‘拿麵’이라 부르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손으로 쳐서 실처럼 뽑아낸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이 기술은 사라지지 않고 전수되어 수타 짜장면집이 성업하기도 한다. 원래는 화교의 고유 기술이었지만, 점차 한국인도 배우게 되었다. 중국집의 주방에서 면판은 꽤 파워가 있었다. 요즘은 불판, 칼판, 면판 식으로 서열이 정해져 있지만 원래 고유한 중국 주방은 각기 협업하는 형식이었다. 오히려 칼판이 더 힘이 세기도 했다. 면판도 요즘은 그저 보조적인 일(주로 기계로 뽑아내는 단순한 일)로 전락해버렸지만, 주방장의 요구에따라 다채로운 면을 손으로 뽑는 기술은 나름대로 인정받는 자리였다. 예를 들어 닭고기를 얇게 썰고 맑은 육수를 부어내는 기스면(鷄絲)면은 면도 얇고 하늘하늘하게 뽑아야 했다. 이런 주문에 맞추는 기술이 쉽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면을 모두 수타면이라고 뭉뚱그린다. 오죽하면 ‘수타면’이라는 인스턴트 면이 다 나오겠는가. 실은 수타(手打)가 아니라 ‘기계타’일 텐데도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수타란 실제적 형식이 아니라 쫄깃한 면을 만드는 기술 정도로 개념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다. 수타처럼 쫄깃하다, 그렇게 구매자들이 이해해주는 것이다.
일본도 수타면이 있다. 수타라기보다 수연(손으로 뽑음)하는 면이 더 역사적이다. 실제로 현대 중국에서도 반죽을 손으로 두들겨가며 치는 수타면보다 가늘게 뽑아내는 형식이 더 많다.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손으로 뽑는 기술은 그냥 수타면이라고 부른다. 일본은 수연면 기술은 이제 전통기술에 속한다. 대부분 기계로 만든다. 그런데 우동은 더러 수타, 아니 족타가 있다. 양이 적으면 손으로 때리고 누르는 형태이고, 양이 많으면 발로 밟는다. 사누키 스타일이 주로 그렇다. 반죽기를 쓰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전히 발로 밟아서(족타라고 하지 않고 대개는 족답(足踏)이라고 한다) 만든다. 손으로 치든 발로 밟든 목적은 한 가지다. 가루의 글루텐을 더 강하게 활성화시켜 면을 쫄깃하게 만들고자 함이다. 글루텐이 적은 메밀면은 어차피 밟아도 활성화가 되지 않으니 세게 누르거나 밟지 않는다. 그저 주물러서 섞은 후 밀대로 밀어 칼로 자느는 게 보통이다.
족답면은 사람의 체중을 실어서 반죽하므로 더 쫄깃하다. 사누키나 오사카 스타일에서는 이렇게 만든 반죽은 날이 서 있도록 칼날로 삭둑삭둑 자른다. 한국의 수타면이 면을 뽑아내는 것이므로 면의 단면이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운 반면, 족단하여 기계나 칼로 써는 면은 아주 날카로운 단면이 나와야 좋다고 한다. 그것이 면의 물리적 촉각을 강화시켜 씹을 때 다채로운 입체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메밀면도 날이 서도록 뽑는 게 보통이다. 일본은 사무라이 문화의 나라여서일까. 이런 날 선 칼 맛을 유독 즐기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이탈리아 면도 수제면이 인기 있다. 손으로 뽑는 것을 ‘임파스토 아 마노’ 즉 손으로 반죽한 것이라고 특별히 부른다. 이 기술을 하는 사람을 장인처럼 우대한다. 우리가 먹는 스파게티 등의 면은 대개 공장에서 뽑은 것이다. 이런 면은 날이 서 있지 않다. 압출면이기 때문이다. 냉면처럼 기계 노즐로 압출에서 뽑기 때문에 날이 없다. 그러나 수제 면은 다르다. 반죽도, 써는 것도 한국의 칼국수와 판박이다. 칼국수를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칼로 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칼의 단면처럼 날이 서 있는 면의 물리적 맛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수제면도 이런 단면을 느낌을 살려준다. 면을 반죽한 후 길게 펴고 칼로 송송 썬다. 이것을 굵게 하면 탈리아텔레, 얇게 하면 스파게티가 되고 더러 아주 얇게 해서 엔젤헤어(천사의 머리카락)처럼 얇게 만들기도 한다.
서로 다른 나라, 대륙이지만 역사를 넘어 이런 면의 기술이 공유되는 건 우연이 아니라 면의 발명과 전파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어떤 면이든 소스나 육수에 넣어 먹는다는 것도 다르지 않다. 춥다. 따뜻한 육수를 끓이고 면을 반죽해서 탕면을 끓여먹고 싶다. 그게 우동이든 이탈리아식 국물 면이든 중국의 국수이든. 국수는 다 친구니까.
/글 = 박찬일 셰프
※ 제공자 허락 없이 무단 게재는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연관 누들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