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폴로가 이탈리아에 중국의 면을 전해주었다는 얘기는 설에 불과하다. 이탈리아가 면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납작한 ‘라자냐’를 먹은 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고, 자연스레 면이 생겨났을 것이다. 넙데데한 반죽을 보면, 누구든지 집어 뜯거나(수제비), 칼로 가늘게 썰(국수)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물론 마르코 폴로 이전에 이미 이탈리아 반도에 국수가 있었다는 문헌도 있으니, 파스타는 이탈리아의 고유한 국수 문화였을 것이다. 아랍에서 전래되었든 자생적으로 생겼든 말이다. 국수는 정말 재미있는 음식이다. 빵이나 국수는 다 같은 밀가루로 만든다. 그런데 빵이란 것은 원래 밋밋한 가루이던 밀이 물과 이스트를 만나 발효되어 부풀면서 입체감을 갖는다.
반면 국수는 평면적이다. 이는 어쩌면 동서양을 가르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마치 입체 재단을 하는 서양 옷과 평면 재단의 한복의 차이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빵은 마른입으로 침을 더해서 녹여 먹는 음식이지만, 국수는 소스나 국물에서 윤활 성분을 얻어 입에 들어온다. 그래서 빵은 몰라도 국수는 호로록 하는 물리적 소리를 중시하는 민족도 생겨난 것이다. 참고로 국수를 먹는 민족 가운데 일본만이 소리를 내는 것이 오히려 ‘예의’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국수 빨아들이는 소리가 결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일제 치하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 전에 이미 조선에서 국수를 소리 내어 먹지 말라는 문헌 글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중국도 소리 내어 먹는 건 결례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국수 천국이다. 남북동서를 막론하고 국수를 좋아하고 일상적으로 먹는다. 남부에는 독자적인 국수 문화가 있다. 완탄이라고 하는 면은 국제적인 인기가 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국수가 하나 있다. 바로 이몐(伊麵·이면·사진)이다. 문자 그대로 이탈리아의 면이란 뜻이라고 한다. 대만에서 비슷한 스타일을 두고 의면(意麵)이라고 하는 걸 보면 유추가 가능하다. 대만에서는 이탈리아를 ‘이타이리’(意太利)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면은 파스타처럼 달걀을 넣고 소다까지 더해서 노란색을 띤 건조 면이다. 보통은 튀겨서 라면처럼 보인다. 라면의 원조라고 해도 될 정도다. 튀긴 노란색의 면이야말로 우리가 1년에 일흔개를 넘게 먹는 그 인스턴트 면의 모양을 그대로 닮았다. 본디 중국 내륙의 면을 흉내 내어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라면, 그리고 그 면을 더 간편하게 먹기 위해 튀겨서 만든 인스턴트 라면, 노란색이 닮았다고 하여 이탈리아의 면이란 뜻의 이몐이 유행하는 홍콩… 서로 다른 면인 듯하지만, 한가닥의 면에는 국숫발처럼 이어진 우연과 인연의 끈이 아주 길고 튼튼하다. 그러고 보면 마르코 폴로의 파스타 중국 전래설은 이제 거꾸로 쓸 때가 된 셈이다. 돌고 도는 세상, 라면처럼 길게 이어진 세상. 자, 이탈리아 면(이면)을 한국에서도 끓여보자. 단돈 1천원이면 되는 인스턴트 면이 바로 그것이니.
/글 = 박찬일 셰프
출처 : 한겨레 (2014-09-17)
원문링크 :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6556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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