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스파게티 공장과 한국의 국수 공장은 형제였다.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이 있다. 옛 나폴리 사진이다. 나폴리는 원래 왕이 다스리는 독립된 나라였다. 1800년대 중후반, 이탈리아가 통일의 열기에 휩싸이면서 나폴리도 결국 이탈리아왕국의 일원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나중에 공화국이 되었고, 지금 세계적인 강국으로 G7의 멤버이기도 하다. 나폴리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왕국의 흔적을 간직한 남부의 소박한 도시가 되고 말았다. 그 나폴리의 옛 모습, 왕국 이후 이탈리아 공화국 시절의 사진으로 보인다. 여러 장의 사진이 있는데, 모두 길거리에서 스파게티를 알리고 있는 장면이다. 스파게티는 공장에서 만드는 것으로 알았던 우리에게 다소 충격적인 모습니다. 그렇다. 기계공업이 발달하기 전, 스파게티는 그냥 노천에서 말렸다. 아마도 초보적인 동력으로 국수를 밀거나 압출해서 뽑고, 그걸 햇볕 찬란한 나폴리 거리 어디서든 말렸다. 나폴리는 국수 말리기에 최고의 도시였다. 겨울의 일부 시기를 빼면 비가 잘 오지 않았고, 아주 건조했다.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나폴리, 북부 제노바 지역의 공통점은 모두 초기 스파게티 생산의 거점이었다는 점이고 동시에 항구도시였다는 점도 그렇다. 미국과 캐나다의 밀가루가 들어오기 좋았고, 항구이니 수출입에 유리했다. 또 비가 잘 오지 않고 건조하고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는 도시라는 점도 중요한 공통점이었다.
그런데 이 국수 말리기 장면을 보면서 어떤 작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도 이런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19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동네마다 이런 공장이 한국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5년, 외국에 밀가루 등의 식품을 원조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었고 1956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도 밀가루가 많이 들어왔다. 쌀이 부족한 한국에게 밀가루는 천국의 선물이었다. 국수, 수제비,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동네마다 기본적인 장비만 갖춘 국수공장(이라기엔 너무 영세하고 작은)들이 생겼다. 어머니가 국수를 사오라고 하면 이런 가게에 가서 근(600그램이 한 근)이나 관(3.75kg)으로 사왔다. 국수는 가난한 가정에 필수적인 양식이었다. 쌀은 비쌌고, 국수는 쌌다. 멸치가 아주 싸게 팔렸고, 그걸로 국물을 내어 말아먹거나, 김치를 넣고 비벼먹었다. 당대의 인기 메뉴인 잔치국수와 비빔국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동네 국수공장이 지금도 몇 개 남아 있다. 포항 구룡포에 있는 제일국수공장, 예산의 쌍송국수 등이 그것이다. 나는 이곳에 모두 가 보았다. 과연, 옛날 국수 뽑는 기계 그대로 국수를 누르고 썰어서 햇빛에 말리고 있었다. 햇빛에 국수를 말리면 천천히 말라가면서 맛이 깊게 든다. 열풍으로 급속 건조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제일 국수의 경우 해풍이 부는 마당에 말린다. 이 집 국수가 제일 맛있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가을에서 겨울 사이다. 이 때 북동풍인 하늬바람이 부는데, 이 것이 아주 건조한 바람이라고 한다. 날씨는 쌀쌀하지, 바람은 건조하지, 이른바 저온건조법으로 국수 맛을 잘 들이는 데 최적인 것이다. 천천히 마르니까 더 맛있는 것이다. 어쨌든 한국에 생겨났던 동네 국수 공장은 기름과 전기를 아끼기 위해 가능한 태양열로 국수를 말렸다. 어른들이 옛날 국수 맛이 좋았다고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나폴리의 스파게티와 한국의 잔치국수는 서로 비슷한 국수이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요리 취급을 받는다. 카르보나라 한 그릇과 잔치국수의 가격 차이도 많이 난다. 카르보나라는 좀 고급스러운 서양 음식이라고 생각해서 비싸도 사먹는다. 잔치국수는 한 그릇에 만원을 받는다면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른다. 사실, 두 국수는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고, 사실상 다른 점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파게티가 그들이 좋아하는 고단백의 듀럼밀을 쓴다는 것이 좀 다를 뿐이다.
길거리 국수 공장이 나폴리와 한국이 닮은 것은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조선땅에 생겼을 것 같다. 일본은 유럽에서 적극적으로 제분, 제면 기술을 받아들였고 식민지인 조선에도 이식했을 것이다. 또 6〮25전쟁 이후 미국 수입 밀가루가 늘어나면서 국수 수요를 대기 위해 60년대 이후 이런 국수 공장이 한국에도 많이 생겨났다. 구룡포와 쌍송 국수 모두 이 시기에 문을 연 공장이다.
알고 보면 형제지간인 두 국수의 모습은 현재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국수’라는 큰 그림 아래서 여전히 그 혈맥은 이어져 있지 않을까 싶다.
/글 =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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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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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Filari di pasta in piazza triv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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