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탄생한 쫄면,
중국에서 들어와 식탁을 평정한 당면,
중국산이지만 일본화되어 들어온 라면까지
흥미로운 면의 여러 가지 얼굴들
쫄면은 학창시절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학교 앞 분식집의 최고 메뉴였다. 보통 남자는 우동, 여자는 쫄면이라는 이상한 분류가 있어서 대놓고 사먹지는 못했다. 몇 번 먹어보았는데, 오호라! 이건 면의 신세계였다. 자극적이고 진한 양념도 맘에 들었다. 질기디 질긴 쫄면, 그걸 이로 끊어내느라 쉽지 않았다. 더러 이 쫄면을 ‘소개팅’이나 미팅에서 먹는 애들이 있었는데, 얼굴이 어지간히 두껍거나 감이 좀 어두운 축에 들었다. 처음 보는 이성 앞에서 그 질긴 면을 이빨로 잘근거리며 끊어내야 했으니까.
쫄면은 알다시피 우연히 탄생했다. 인천의 광신제면에서 냉면제조용 기계를 돌리는데, 노즐을 잘못 끼웠다는 것이다. 반죽은 냉면용으로 쫄깃하게 했는데, 노즐은 그만 일반 우동 국수 것을 쓰고 말았다. 굵고 쫄깃한 면은 그때 탄생했다. 버리자니 아깝고 한 번 납품을 해보았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기존의 냉면은 어른의 음식이었고, 새로운 쫄면은 아이들이 좋아할 개성을 타고난 것일까. 양배추와 당근, 오이 등을 채 썰고 달걀 반쪽에 양념장을 한 숟갈 푹 올려서 내면 열심히 비벼서 먹었다. 얼마나 매운지 입가가 타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쫄면이 노란 것은 계란 때문이 아니다. 면이 쫄깃하라고 알칼리성분을 넣기 때문이다. 라면의 색도 그런 까닭이다. 중국집 짜장면이 노란 것도 같은 이유다. 배달 짜장면이 불지 말라고 알칼리를 더 넣게 되었는데, 이 아이디어를 쫄면에서 얻었다는 설도 있다. 쫄면은 어지간해서는 붓지 않고 쫄깃함을 오래 유지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요새 짜장면은 쫄면에 소스를 덮어서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쫄면은 인천해서 탄생했으나 전국적으로 퍼졌다.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문화충격을 받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라면이다. 일본의 라면은 생면을 쓰고, 가게마다 다른 비법의 국물(스프라고 부른다)과 고명으로 승부한다. 반면 한국의 라면집에 갔더니 인스턴트 봉지에서 라면을 꺼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요즘은 일본에도 아주 드물게 인스턴트 라면을 파는 집이 잇는데, 이는 그 방면의 마니아를 대상으로 하는 집이지 일반적인 라면집은 아니다. 한국의 라면집에서는 누구나 같은 인스턴트를 쓰되, 고명과 약간의 양념을 달리하여 맛을 내는 것을 신기해 한다. 특히 계란을 넣어주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란다. 일본에서는 계란을 반숙으로 삶아 양념을 먹여 올려내는데, 한국은 계란을 국물에 풀어버리기 때문이다. 또 라면에 밥을 말아먹는 것도 신기해 한다. 일본도 더러 ‘시루고항’이나 ‘라이스’라고 하여 밥을 추가(보통 100엔)하는 경우도 있는데 흔하지는 않다. 대신 ‘카에다마’라고 하여 사리를 추가하는 게 보통이다. 많이 먹는 사람은 사리 두어 개쯤은 거뜬하다.
일본의 라면(라멘이라고 해야겠다)은 국물을 뽑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면은 상당수가 사오는 경우가 많다. 가게가 작아 제면기를 놓기 어렵고, 손도 줄일 수 있어서다. 저마다 다른 스프 비법을 자랑한다. 기본은 돼지와 닭뼈를 푹 고아 쓰는 것이다. 여기에 ‘다브르 스프’(더블 스프)라고 하여 가츠오부시를 기본으로 하는 생선맛의 소스를 섞어서 내는 경우도 많다. 요새 대세다. 한국에 라멘집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15,6년 전 쯤이다. 일본 유학생이 많은 홍대 앞과 이태원에서 움을 틔우기 시작, 요즘은 꽤 큰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몇몇 집은 줄을 서기도 하고, 일본처럼 심야에도 문을 여는 집도 있다. 일본에서 라멘은 점심 식사용이면서 심야 해장용이다. 생맥주 한잔에 라멘을 먹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마시는 국물 음식이 한국의 해장이라면, 일본은 술을 마신 후에 먹는 음식을 해장으로 본다.
일본 라멘집의 특징 하나 더. 대개는 교자(만두)를 같이 팔고, 생맥주를 곁들이는 사람이 많다. 원래 라멘은 1930년대인 중일전쟁 이후에 처음 일본 본토에 생겨났다고 하며 본격적으로는 전쟁이 지고 중국 귀환자들이 들어와 포장마차 등에 중국땅에서 먹었던 라멘을 재현해 팔면서 시장이 커졌다고 한다. 또 일본땅에 많이 사는 화교들이 그들의 국수문화를 일본인에게 퍼뜨리면서 이름붙은 것이 또 라멘이다.
잡채도 일종의 국수다. 그래서 이름이 당면(唐麵)이다. 당나라의 면이라는 뜻은 아니고, 당은 곧 중국을 뜻한다. 고려라는 ‘코리아’가 한국을 뜻하듯이. 이 당면은 조선 후기에 이미 국내에서 인기가 있었다. 중국 사신이 가져오거나 무역으로 도입했다. ‘분쓰’라고 불렀는데, 실처럼 가는 면이라는 뜻이었다. 요즘 당면보다 아주 가늘었다. 이 것을 가볍게 삶아 기름에 버무리면 고운 맛이 나서 인기가 있었다. 지금도 이 분쓰는 우리식의 당면보다 중화권이나 일본에서 아주 인기가 있다. 일본은 이 면을 받아들이면서 자기네식으로 ‘하루사메’ 즉 춘우(春雨)라고 이름붙였다. 봄비처럼 가늘고 고운 면이라는 뜻이겠다. 듣기에도 아름답다. 영어로는 보통 글래스 누들(glass noodle)이라고 쓴다. 이것도 참 멋지고 운치 있다.
한국은 이 당면을 받아들여 기존의 채소와 고기를 채 썰어 만드는 잡채에 넣기 시작했다. 원래 잡채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 고급 요리다. 당면이 싸게 보급되면서 점차 원래 잡채에 들어 있던 고명은 줄고 대신 당면의 양이 늘었다. 누구나 잡채를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러므로 당면은 대략 50년도 안 된 국수 요리다. 외국에 잡채를 소개하면서 ‘매우 전통적인 한식’으로 알리는 것은 좀 어색한 이유다. 잡채면, 즉 당면은 잡채에만 쓰이지 않았다. 만두에도 들어가서 양을 늘렸고(오히려 당면 들어간 걸 더 좋아하는 이도 많다), 결정적으로 순대에 들어가서 순대 보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순대에는 원래 고기 부스러기와 선지, 채소가 들어간다. 원가가 높은 고급요리다. 그러나 당면이 그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대폭 원가를 낮출 수 있었다. 배고픈 우리에게 싼 순대는 선물이었다. 다 당면의 보급과 관련이 있는 셈이다.
인스턴트라면은 1956년 일본에서 생겨나 점차 시장을 확대해 가다가 도쿄 올림픽을 전후해서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한국에도 1960년대에 도입되어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그런데 이 라면은 식사로만 팔린 것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생라면이라고 부르면서 라면을 부수고 거기에 스프를 뿌려 간식으로 먹었다. 이때 일본에서 라면을 재료로 한 과자로 도입된다. 라면땅 같은 것들이다. 라면 기술을 응용한 과자다. 요즘에도 이런 형태의 과자는 인기가 있고, 1970, 80년대에 아주 잘 팔렸다. 필자도 이 것 한 봉지를 사먹기 위해 부모님을 졸랐던 기억이 있다.
/글 =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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