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 - 황광해 칼럼니스트

경당고택 종부 권순씨의 안동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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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장씨 50년 종부의 삶…국수로 제사
종부 권순씨 대대로 내려오는 제사 수행
영남 음식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주요 도구
건진국시 여름용, 제물국수 추운 때…콩가루 사용 특징

경당 장흥효의 11대 손 장정진, 종부 권순씨 부부. 경당 고택 사랑채 앞에서 

 

 

신부는 색동옷 대신 흰 상복을 입었다. 일생에 가장 화려하고 빛나는 날, 결혼식이다. 미리 알고 결혼했다. 중매가 들어왔을 때, 집안 어른들이 이야기했다. “그 집으로 시집가면 당장 네가 밥 해먹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혼자 속으로 “시집가면 며느리가 부엌살림 하는 거야 당연하지”라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그렇게 하겠다”는 딸의 대답을 ‘결혼에 대한 승낙’으로 받아들였다.


결혼을 전후하여 시어머님과 시조부님이 돌아가셨다. 경당고택(經堂古宅). 안동 장씨, 경당 장흥효 선생 집안의 종부(宗婦) 자리였다. 시누이들도 모두 출가했다. 집안에 당장 부엌살림을 할 사람이 없었다. 소복 입은 새 신부는 시집오던 날부터 부엌살림을 도맡았다. 올해 일흔여덟 된 경당고택의 종부 권순(權純)씨다. ‘신랑’ 장성진(張晟鎭)씨는 경당의 11대 손이었다. 


“결혼했을 때 시가에 여자라고는 아무도 없어서 시고모님 되시는 분이 집안 살림을 하고 계셨습니다. 시가에 들어온 첫날부터 부엌일을 시작했습니다.” 


종가의 살림은 그저 하루 세끼 밥해먹는 일이 아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제사에 불천위제사까지 있다. 계절별, 명절별 제사도 있다. 신랑은 결혼 후 곧 군대에 입대했다. 신랑도 없는 신혼생활이 이어졌다.


“남편이 제대한 후, 대구에서 잠깐 공무원 생활을 했을 때 나가서 살았습니다. 곧 시댁으로 돌아오고 그때부터 종가 며느리로 쭉 살았지요.” 


 

 

상에 나가기 전의 건진국시

 

 

 

 

50년을 넘겼다.  


“원래 경북 북부지방에서는 국수 제사를 모십니다. 남편도 밥보다 국수를 좋아하고….”


안동지방의 국수는 ‘건진국시’와 ‘제물국시’로 나눈다. 건진국시는 곱게 민 칼국수를 한차례 삶은 다음, 냉수처리 후 멸치국물에 말아낸다. 예전엔 안동 인근 강가의 은어 우린 국물을 썼다는데 이제 은어는 사라졌다. 


 

제물국시는 흔히 ‘지물국시’라고 발음한다. ‘자기 물에 삶아낸 국수’라는 뜻이다. 제물국시는 끓는 물에 국수를 넣은 다음, 국수 삶은 물을 그대로 국물로 사용한다. 건진국시가 여름용 국수라면 제물국시는 추운 계절에 주로 내놓는다. 영남북부의 칼국수에는 콩가루가 들어간다. “콩가루를 어느 정도 사용하느냐?”는 우문에 “적당히, 알아서, ‘쪼매’ 넣는다”고 대답한다. 흔히, 과학화와 ‘레시피’를 이야기하지만, 역시 음식은 레시피에는 드러나지 않는 정성이다. 아침밥상에 나오는 북어보푸라기는 손으로 일일이 찢는다. 믹서기로 갈아본 적이 있지만 역시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상어편육과 식혜마저 늘 하던 방식대로 일일이 손길을 거쳐야 제 맛이 난다. 영남의 음식은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주요도구다.


종부 권순씨의 친정은 영양 입암(立岩)의 안동 권씨 종가다. 산택재 권태시 어른의 후손들이다. 종부의 음식은 안동 북부의 음식을 모두 모은 후 새롭게 재창조한 것이다. 영양의 친정 집안 음식과 경당고택이 친정인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 할머니의 음식솜씨도 섞여 있다. 16세기 초반 <수운잡방>을 기록한 탁청정 김유의 집안과도 가깝다. 당연히 음식은 섞인다. 20세기 초반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시의전서>도 이 지방 음식의 영향을 받았을 터이다. 


“50년 이상동안, 종부 노릇이 힘들지 않으셨냐?”는 우문에도 현답이 되돌아온다. “요새는 살기 좋지요. 예전에는 디딜방아로 도정을 해서 밥을 지었지요. 이젠 밀가루도 흔해졌고….”


통밀을 절구에 빻은 다음, 고운 체로 일일이 걸렀다. 체가 없던 시절에는 고운 명주천에 가루를 놓고 일일이 걸렀다. 때로는 방안에서 밀가루를 부채로 날린 다음, 멀리 날아가는 고운 가루만 모아서 국수를 만들었다. 국수는 귀한 음식이다. 밀가루는 귀했다. 제사나 결혼식에만 국수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다. 국수는 미리 준비해야 하는 음식이다. 갑작스럽게 닥치는 초상에는 국수를 쓸 수 없다. 육개장을 쓰는 이유다.


 

2016년부터 종부는 50년 이상동안 해온 국수 써는 일을 멈췄다. 종부의 나이 일흔 여덟.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참 죄송스럽지만, 조금만 더해주었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 다행히도 조만간 며느리가 종가의 살림을 물려받을 예정이다. 세월이 얼마간 더 흐르면 우리는 경당고택의 12대 종부가 만드는 단아한 국수를 만날 것이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출처 : [주간한국] <이야기가 있는 맛집(217)> 경당고택 종부 권순씨의 안동국시

원문링크 : http://daily.hankooki.com/lpage/politics/201604/dh2016040707001313743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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