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 - 황광해 칼럼니스트

춘천산골막국수 서민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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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국수의 시작, 춘천에서 서울로 전파…2013년 ‘서울미래유산’ 지정
1962년 춘천 지암리에서 시작…공사판 노동자 새참으로 막국수 내놔
당시 팔던 ‘닭 불고기’ 오늘날 ‘춘천닭갈비’로 유명해져
막국수 고명과 육수에 꿩고기 사용… 현재 다양한 재료 사용
“막국수는 현재 진행형…우리시대의 막국수 만들고 싶어”

  

서민식 대표와 어머니 김종녀씨. 서씨는 아직 어머니가 대표고 스스로는 '알바'라고 얘기 한다.



막국수는 ‘현재 진행형’이다. 막국수에 대한 오해는 깊다. ‘춘천산골막국수’. 막국수의 시작이다.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막국수를 춘천에서 처음 시작했고 서울에 전파시켰다. 이제 막국수는 전국적으로 퍼졌다. 막국수에 대한 ‘오해와 이해’. 서울 을지로 4가 ‘춘천산골막국수’의 3대 사장 서민식 대표를 만났다. 


 

'춘천산골막국수'의 막국수. 계절에 따라 40-60% 정도의 메밀 비율이다. 

 

할머님이 1962년 처음 막국수 가게를 낸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 대표가 3대인 셈이지요?


“할머니(고 임금례 씨)께서 처음 막국수가게를 시작하셨습니다. 1962년이지요. 할머니는 춘천에서 시작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춘천 중앙로 2가 108번지에서 막국수 가게를 하셨습니다. 처음 하셨던 곳은 춘천 외곽의 지암리라는 곳으로 들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제가 3대 대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어머님이 대표이시고, 저는 아직 가게 ‘알바’ 수준입니다.(웃음) 어머님 모시고 일 배우고 있는 중이지요.”


서민식 대표는 1964년 생. 1987년 무렵부터 ‘춘천산골막국수’ 운영에 참가했다. 외부에서 하던 일을 접고 1994년 본격적으로 막국수 가게 운영에 뛰어들었다. 서 대표는 “막국수는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음식이니 잘 다듬어서 앞으로 정확한 모습을 그려야 할 음식”이라고 표현한다.

 

막국수가 “소양댐 건설 현장의 근로자들을 위한 음식에서 출발했다”는 주장도 되짚어봐야 한다. 서민식 대표가 말하는 ‘지암리’는 춘천시 사북면 지암리다. 춘천의 서북쪽에 있는 산골이다. 소양댐과는 거리가 멀다. 소양댐은 1967년 4월에 착공, 1973년 완공했다. 이 무렵에는 지암리의 막국수 가게, 춘천시내 막국수 가게를 거쳐 서울 다동에 ‘산골막국수’가 문을 열었다. 소양호, 소양댐 건설 시기에 이미 막국수는 서울까지 진출했다. 막국수는 소양댐 건설 노동자를 위한 음식에서 출발했다는 주장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춘천산골막국수'의 비빔막국수. 

 


막국수는, 막 내려 먹는다고 해서 막국수라고 부른다는 표현이 맞는가요?


“그렇게 들었습니다. 메밀은 구황식품입니다. 가난한 강원도 산골에서는 먹을 것이 더 귀했지요. 막국수는 냉면과 밀가루국수를 흉내 낸 식품이지요. 막국수를 조선시대에 서민들이 먹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아무리 빨라도 일제강점기였겠죠.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는 막국수와 비슷한 형태의 메밀음식은 만들었을 겁니다. 메밀가루를 얻기 힘드니 절구질로 메밀가루를 만들었던 걸로 들었습니다. 강원도 일부 지방은 1970년대에도 전기가 귀했습니다. 깊은 산골에서는 고운 가루를 얻기 힘들었지요. 겉껍질을 벗기면 녹쌀이 나오는데 이 과정은 전기가 없으면 힘듭니다. 대부분 겉껍질 채로 절구질을 했지요.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막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손님들 치아 사이에 까만 메밀껍질이 끼곤 했습니다. 혀도 까칠까칠하고요. 지금도 그 질감을 못 잊어서 ‘예전 막국수를 만들어 달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전기가 없었으니 요즘 사용하는 유압식 막국수 기계도 없었지요. 전기를 사용하는 유압식기계는 1980년대 들면서 시작된 걸로 기억합니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분틀, 분자기 형태였습니다. 국수 뽑는 기계에 쇠막대를 끼워서 사람 힘으로 내리 눌렀지요. 가끔 쇠막대기가 부러져서 막국수 뽑던 이들의 치아를 부러뜨렸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도 앞니가 부러져서, 어린 시절 아버님이 틀니를 뺐다 끼웠다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할머님이 처음 만드신 막국수는 어떤 형태였던가요? 언제 서울로 오셨나요?

 

“할머님이 처음 문을 연 가게는 정식 가게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춘천 인근에는 댐 공사 등 여러 공사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실비집을 하셨습니다. 요즘 공사장의 ‘함바집’ 같은 형태였지요. 막국수는 정식 메뉴가 아니라, 새참으로 내놓는 음식이었습니다. 밥집을 하셨는데 막국수 인기가 좋으니 막국수를 내놓는 가게를 하셨지요. 막국수 가게도 막국수와 더불어 ‘닭 불고기’도 팔았습니다. 지금은 ‘춘천닭갈비’라고 부르는 음식이 원래 닭 불고깁니다. 서울로 진출한 것은 할머님이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님이십니다. 할머님은 춘천에서 막국수 가게를 운영하시고, 아버님은 1969년 서울 다동 20번지에 막국수 가게를 여셨습니다. 아버님이 여신 가게 이름이 ‘산골막국수’고 할머님은 춘천에서 ‘유달막국수’를 운영하셨습니다. 할머님이 여행 중에 목포 유달산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가게 이름을 ‘유달막국수’로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손님들이 자꾸 막국수 집이 아니라 호남음식 파는 집 같다고 해서 나중에 아버님의 서울 가게 이름을 따서 춘천도 ‘산골막국수’로 바꿨지요.” 


 

 ‘춘천산골막국수’는 서울시의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그 무렵의 막국수 고명이나 육수는 어떤 걸 사용했던가요? 


“제가 어린 시절에는 주로 꿩고기 육수를 사용했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방학이면 늘 춘천 할머님 댁에 갔습니다. 서울, 춘천 가게 모두 꿩 잡는 ‘전속 포수’가 있었습니다. 꿩을 잡아서 가게에 가져다 주는 분들입니다. 토끼도 그분들이 잡아오고…. 꿩은 털을 뽑고 나면 아주 작습니다. 조금 큰 병아리 만하지요. 뼈를 추리면 고기를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살이 흩어지니 꿩을 통째로 사용했습니다. 육수를 내면서 푹 삶은 꿩을 칼로 다져서 둥근 완자로 만듭니다. 그걸 막국수 위에 올리면 고명이 됩니다. 씹으면 꿩 뼈가 씹힙니다. 다행히 날짐승이라서 뼈 속이 비어 있습니다. 메밀껍질도 입에 씹히고 뼈도 씹힙니다. 


할머님 고향은 평양입니다. 결혼하시면서 서울로 왔고 나중에는 춘천에서 사셨지요. 음식을 아주 잘 만지셨는데 북한식입니다. 다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공사장에서 일을 하셨고 음식 솜씨가 좋으니 나중에 막국수 가게를 운영하셨지요. 할머님은 늘 냉면이나 국수를 머릿속으로 그리셨습니다. 공사장의 인부들에게 새참으로 냉면이나 국수를 주고 싶은데, 그게 힘드니까 막국수를 내놓은 것이지요. 냉면이나 밀가루 국수 비슷한 음식을 내놓으려고 여러 가지 곡물을 써봤다고 합니다. 좁쌀로도 해보고, 찹쌀로도 해보고. 지금도 남아 있는 옥수수로 만든 올챙이국수 같은 것도 해보셨겠지요. 1970년대 초반까지도 서울에서는 막국수가 뭔지 모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집에서 뭘 하느냐?”고 하시더라고요. “막국수 집 합니다”라고 했더니 느닷없이 교과서도 공짜로 주고 육성회비를 면제해주더라고요. 아마 막국수 집이 포장마차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 같으니 혜택을 준 것이지요.” 



앞으로 만들고 싶은 막국수는 어떤 형태인가요? 


“예전에는 막국수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최근 춘천시가 박물관을 지었으니 다행입니다. 막국수는 정형화된 음식이 아닙니다. 꿩고기 육수다, 동치미국물이다, 닭고기 국물이다 등등 ‘설’이 많은데 어느 것을 두고 전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색합니다. 음식이 귀한 강원도 산골에서 궁여지책으로 만든 음식이지요. 역사도 이제 50년을 넘겼고요. 현재 진행형의 음식이니 오히려 앞으로 발전할 요소도 많다고 믿습니다. 막국수 공부를 하려고 일본에 가서 메밀 소바 등을 본 적도 있습니다만, 우리 막국수는 일본 소바와는 다른 면이 많습니다. 면도 다르지만 육수도 다르고요. 우리만의 막국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100% 메밀막국수가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발전된 형태의 음식이라고 믿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면 언젠가는 우리만의 막국수가 완성되겠지요.”

 

개인적인 어려움은 많다. 현재 을지로 4가에 있는 ‘춘천산골막국수’는 재개발 대상지역이다. 1960년대 재개발 대상지역으로 확정되었다. 50년을 넘겼다. 이 지역안의 건물은 신축은 물론이고 개축, 증축 등 일체의 건축행위가 금지된다. ‘못 하나도 함부로 못 박을 정도’의 상황이다. 손을 볼 수 없는 건물이니 손님이나 가게 일하는 이들 모두 불편하다. 실제 ‘춘천산골막국수’에는 주방이 2곳 있다. 합치고 싶지만 힘들다.


 

막국수를 처음 시작한 할머니 임금려씨는 북한 평양 출신이었다. 

 

할머니가 만들었던 순대를 몇해전 재개발, 매뉴로 내놓고 있다.


가게 단골들이 많다. 퍽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힘들다. 수십 년 가게에 드나든 손님들은 음식이 조금만 달라지면 바로 “달라졌다”고 항의를 한다. 작은 변화도 없이 꾸준히 음식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00% 메밀 면을 내놓았더니 “면이 힘이 없다. 이게 무슨 메밀 막국수냐?”고 항의하는 손님도 있다. 조미료, 감미료, 염도 등을 줄였더니 상당수의 손님들이 “주방장이 바뀌었냐?”고 항의한다.


구황식품이었던 메밀은 이젠 귀하신 몸이 되었다. 메밀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이른바 국산에 대한 믿음이다. 국산 메밀은 돈을 주고라도 못 살 정도로 귀한 식재료가 되었다. 소비자들은 중국산 메밀은 “굉장히 가격이 낮다”고 믿지만 그렇지도 않다. 20Kg을 기준으로 10만 원선이다. 밀가루는 2만 원 정도다.


“막국수는 현재 진행형이니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가 새롭고 그럴듯한 우리시대의 막국수를 만들지 않을까요?”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출처 : [주간한국] [이야기가 있는 맛집(224)] 춘천산골막국수 서민식 대표

원문링크 : http://daily.hankooki.com/lpage/life/201605/dh20160511095526138910.ht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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